찌라시 언론 기레기 시리즈 [28]: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김대중 기자

[김대중 칼럼] 이승만과 박정희의 말로를 보다 

'찌라시 언론 기레기 시리즈'를 처음 시작한 게 2016년 9월 28일이니까 벌써 3년 하고도 6개월이 되어간다. 엉터리 기사를 찾아 나선 건 아니고, 아이폰으로 다음 미디어에 뜨는 기사 중 흥미로운 제목을 골라 읽다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특급 불량 기사가 있으면 그 링크를 내 이메일로 보내 놓고,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오류 지적하는 글을 써 올렸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기레기 1호, 기레기 2호 하며 이미 머릿속에 서열이 자리 잡은 원조 기레기부터 시작하지 않았고, 특정 언론사를 목표로 하지도 않은 무작위 추첨이었다. 대한민국 언론계의 허경영인 김대중 기자가 이제야 등장한 이유다. 

조선일보 기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위에 설명한 대로 의도적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든다. 

1. 기사의 수준은 독자의 그것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산수 교과서에서 미적분을 다룰 수 없는 거와 같다. 조중동과 유튜브 가짜뉴스 채널에만 의존하여 유난히 정보력이 떨어지고, 정치에 관한 한, 경우의 수 계산에 백치 수준일 만큼 편견에 사로잡힌 조선일보 주 독자층엔,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미적분으로 분석해야 할 사회 현안을 구구단으로 풀어 선동하는 게 효율적이다. 

2. 진실관 무관하게 친독재 세력을 옹호하고, 친민주 세력을 폄훼하는 사주의 정치색에 기자들이 가짜뉴스를 마다할 수 없는 구조로, 자신의 양심과 이성, 그리고 논리를 거스르며 먹고 살기 위해 쓰는 기사는 여기저기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조선일보 홈피를 매일 방문하며 작심하고 엉터리 기사를 찾아 나섰다면 하루에 한 개는 방금 구운 따끈따끈한 붕어빵 먹기였을 테니, 아마도 지금쯤 내 '찌라시 언론 기레기 시리즈' 글 수가 1,000개는 족히 넘었지 싶다. 

김대중은 조선일보 수습 기자들에게 "글을 잘 쓴다는 건 문장력과 어휘력인데, 문장력보단 상황에 딱 맞는 단어를 고르는 어휘력이 더 중요하다"며 어쭙잖은 충고를 한다. 김대중의 문장력이 신통치 않다는 건 비밀이 아니지만, 어휘력이 좋다며 은근히 뻐기는 그의 거대한 착각과 자기도취에 난 풉- 하고 실소가 터졌다. 혀짤배기 서당 훈장이 "나는 바담 풍해도 너희들은 바담 풍(바람 풍)해라." 했다더니, 나이만 먹으면 절로 관록과 경륜이 생기는 줄 아는 덜떨어진 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차라리 수습 기자들에게 "너희들도 사주한테 아부만 잘하면 나처럼 독자가 댓글을 아예 못 달게 할 수 있게 된다."라는 충고를 하는 게 실용적이고 설득력 있었을 거 같다. 

문장력과 어휘력은 기자를 포함하여 글 쓰는 이의 도구일 따름이고, 좋은 기자의 본질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객관적' 진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로, 독재 시절 프로파갠다 기사가 아무리 뛰어난 명문장이면 뭐하나? 진실을 왜곡하고 외면하는 글은 가치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본론으로 들어가 김대중의 기사 내용은 고동색, 그 아래 검은색 활자는 그에 대한 내 생각이다. 기사 전체가 토씨 빼곤 죄다 틀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류가 심각하여, 딱 한 문단만 골라 반론했는데도 내 글이 상당히 길어졌다. 

[기사 인용] 이승만은 건국의 공이 있고 박정희는 흥국의 업적이 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니 건국의 아버지라 할 순 있지만, 사실상 건국의 공이 별로 없다. 그가 당시 한국보단 미국의 국익에 더 부합하는 인물이라 부족한 정통성에도 미국의 의지로 대통령이 되었을 뿐이다. 그는 독재자가 되어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장기적으론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민의를 짓밟은 망국 대통령이었다. 북한 건국의 공이 김일성보단 소련에 더 있듯, 남한 건국의 공을 굳이 따지자면 미국 정부에 있다고 해야 한다. 

박정희를 흥국 대통령이라 칭한 김대중은 '흥국'의 뜻을 잘 모르는 거 같다. 흥국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융성하게 일으키는 것'이니, 예를 들자면, 고구려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을 흥국의 왕이라 하지, 소수림왕이나 미천왕을 흥국의 왕이라 하진 않는다. 소수림왕은 흥국의 발판을 마련했고, 미천왕은 흥국의 발판을 위한 첫 삽을 뜬 왕이었다. 

아래 도표는 1960년부터 2018년 7월까지 한국의 GDP 추세다. 

1961년부터 박정희가 김재규 총에 맞아 죽은 1979년까지를 도표에서 보면 흥국하곤 거리가 멀다. 의미를 꼭 부여해야만 한다면, 전두환에겐 '경제 발전의 발판 마련', 박정희는 '경제 발전의 발판을 위한 첫 삽'이란 표현을 할 순 있겠다. 

내가 그동안 기사를 통해 본 절대다수의 조선일보 기자는 암기력만 왕성하지 논리력, 이해력이 태부족한 게 특징이다. 해서 쉬운 말로 풀어 준다. 100만 원을 투자하여 1,000만 원, 1억 원을 투자하여 10억 원, 100억 원 투자로 1,000억 원, 1조 원 투자를 10조 원으로 만드는 건 모두 산술적으로 1,000% 투자 수익률이지만, 투자의 난이도로 따지면, 액수가 커질수록 모험적 투기를 피해야 할 뿐 아니라 돈의 규모 때문에 신속한 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져 다른 차원의 투자법이 적용된다. 

초창기 푼돈 100만 원의 종잣돈을 1,000만 원으로 불린 건 다음 단계 투자의 귀중한 밑천이 된 거지, 100억대 부자가 돌이켜보고 흥할 '흥' 자를 붙일 만한 업적이 아니란 말이다. 

한국의 일 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158였는데,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 덕분에 무려 40%를 말아 먹어 1961년엔 $94가 되었다. 흥국은커녕 망국 대통령의 표본이었다. 죽은 1979년엔 전형적인 후진국 $1,774였고, 지금 문재인 아래 2018년엔 $33,200로 $39,293인 일본의 85%까지 추격했다. 

위 도표에 의하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절 고도 경제성장을 했고, 김대중은 IMF를 현명하게 극복하였으며, 노무현 시절 잘 나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휘청댄 이명박도 V자로 회복했고, 박근혜, 문재인 때는 선진국형 경제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해서, 전두환부터 그 누구도 흥국 대통령 후보일 수 있지만 1980년대 이전은 아닌 거다. 박정희의 호나 다른 이름이 흥국이거나 박정희 우상 숭배자라면 모를까 '흥국 대통령'은 박정희에게 붙일 수 없는 명칭이다. 

한국과 비교하기 위해 참고로, 1960년부터 2018년 7월까지 몇몇 다른 나라의 GDP 도표도 가져왔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다시 시작한 독일, 영국, 그리고 민주주의를 처음부터 고집한 인도와 한국을 비교하면 한국은 지금까지 그 어느 기준으로도 잘하고 있다. 다만 박정희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개발 독재 당위성, 필연성이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는 게 자명할 뿐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독재 체제인 중국이야말로 박정희 숭배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경우라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중국을 멸시하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그게 바로 군사독재 시절 불법 정경유착 관행으로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정착하여, 여전히 국가 투명도가 후진국 수준인 한국을 다른 나라가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사실은 왜 보지 못하는 걸까?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할 만큼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의 개발독재 지도자들은 박정희완 급과 격이 다른 흥국의 지도자들로, 박정희 숭배자들의 진정한 우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 독재 시절 인권에 대해선 함구하면서 북한, 중국 인권만 열심히 찾고, 한국에서 개발 독재가 있었기에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주장하며, 중국 개발 독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기사 인용] 장기 집권의 욕심과 민주주의 일탈로 허무하게 스러져.... 

이건 독재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거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아래 국민이 겪었던 공포, 고초, 불의를 모두 무시하고, 독재자가 '허무하게' 권력을 놓쳤다는 동정심은 올바른 역사관, 자유, 사회 정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시각일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가 저지른 수많은 범법행위의 공범 및 종범인 측근의 자수, 고백, 양심선언을 배신과 저격이라고 규정한 기레기들을 난 찌라시 언론 기레기 시리즈 [6]: 중앙일보 송승환, 조선일보 이옥진 기자에서 다루었다. 

[기사 인용] 문 대통령은 그들에 비해 무엇을 내세울 수 있나? 오히려 문 정권은 정권 초기부터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정희 시절 적폐를 그대로 답습한 박근혜·최순실 공동 정권의 초대형 불법, 부정부패, 부조리, 비리를 적폐로 규정하여 적폐청산을 공약했고, 평화적 촛불혁명과 민주적 선거로 탄생한 정권이다. 거국적 민심을 대변한 것 하나만으로도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 고착화, 선진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아래 1960년부터 2018년 7월까지 한국과 일본의 일 인당 국민소득 비교한 도표를 가져왔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게 2017년 5월 10일인데, 한국의 2017년 일 인당 국민소득은 전년도와 비교해 7.8%, 2018년엔 5.5%가 늘어 $33,320이다. 한편, 일본은 전년 대비 2017년 -1.2%, 2018년 +2.5%로 $39,293이다. 일본은 지난 25년간 제자리걸음이고, 한국은 $8,741에서 $33,320로 3.8배가 되었다. 

경제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를 김대중에게 입 아프게 설명해줘야 제대로 알아들을지도 의문이라, 대신 초등학생도 쉽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도표와 자료를 보면,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 아베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중 누가 나라 경제를 더 걱정해야 할까?

[기사 인용] 일방 독주 문 정권에 독재자 末路의 그림자가.... 

김대중은 자신의 모든 기사에 독자 댓글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정도로 안하무인이다. 그런데 자신이 당당하게 밝힌 이유가 다음과 같다. "내 글을 논리적으로 비평하고 자기 얘기의 줄거리를 세워서 비판하는 건 좋다. 내가 충격받은 건 '왜 그 따위로 글을 쓰느냐'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돈 얼마 받아먹었냐'는 식의 댓글이 달리는 거다. 그런 댓글이라면 차라리 댓글 못 쓰게 한다고 욕먹는 게 내 정신건강을 위해 좋다." 

진보, 보수 구별 않고 모든 대통령을 비판한다며 자화자찬하는 김대중은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대통령의 정신건강은 완전히 무시하면서, 자신의 정신건강만 챙기는 정신병자였다. 

만약 김대중이 대통령이었다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논리적인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비판의 목소리를 탄압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같은 입으로 또 맨정신으로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나? 그가 정치인이었다면 의문의 여지 없이 독재자 성향이고, 기업인이었으면 갑질의 달인, 부모로선 자식과 대화가 불가능한 벽창호기 십상이라는 걸 말해준다. 문재인을 독재자라 비판하는 김대중은 자기 자신에게만 한없이 관대한 내로남불의 대가다. 

영알못 조선일보 기레기들은 검은머리 외신 기자1의 문재인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란 가짜 뉴스를 국문으로 번역하여 유포했지만, 막상 노랑머리 외국 기자들이 그렇게 쓴 기사는 지구상에 없다. 문재인을 독재자라 칭한 노랑머리 외신 뉴스도 없다. 한편 이명박, 박근혜는 불법 블랙리스트 작성하고, 불법 민간사찰을 밥 먹듯 했으며, 박근혜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한통속이 되어 사법농단까지 했는데, 블룸버그 뉴스 이유경이 아무런 근거 없이 문재인을 김정은 대변인이라 한 거처럼, 김대중은 밑도 끝도 없이 문재인을 독재자라 부른다. 이건 아무리 양보해도, 제정신 박힌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독재자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Dictator: 

1. A ruler with total power over a country, typically one who has obtained control by force

    (통상 무력으로 권력을 쟁취하여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통치자)

2. A political leader who possesses absolute power.

    (절대권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 

아무리 뜯어보고 살펴봐도 문재인관 거리가 멀다. 독재자가 되기 위해선, 이승만처럼 전권을 휘두르거나, 박정희·전두환처럼 총칼로 권력을 쟁취해야 한단 말이다. 

논의 상 문재인 대통령이 독불장군이라 가정해도, 그는 삼권분립이 명확한 법치국가의 지도자라 독재자가 될 순 없다. 그리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따져도, 이명박이나 박근혜보다 위법 행위와 독단이 더 심하다곤 할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 재판 기록 정독하길 권한다.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독재자로 부르지 않던 김대중이 문재인을 독재자로 부르는 건 빈약한 어휘력 때문인가 아니면 확성기 들고 머리에 붉은띠 두른 선동가이기 때문인가? 

[기사 인용] 경제는 포퓰리즘으로 멍들어가고 있다. 

경제는 감정이 아닌 숫자의 과학이고, 포퓰리즘은 경제 언어가 아닌 정치 수단의 언어다. 김대중이 경알못이란 건 이미 위에서 증명했고, 이젠 포퓰리즘의 뜻도 모르고 오용, 악용, 남용한다. 

경제 지식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수치를 제시하며 어떤 특정 정책에 의해 경제가 타격을 받았다고 했을 거다. 비유하자면, 경제가 포퓰리즘으로 멍든다는 표현은 박정희의 사악함, 전두환의 포악함, 이명박의 사기술, 박근혜의 우둔함으로 경제가 멍들어가고 있다는 표현만큼이나 두리뭉실이다. 경제학적으로 문재인의 경제 정책 때문에 경제가 침체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세계 경제 동반 하락, 미·중/한·일 무역전쟁 등은 그 이유가 될 수 없다. 누구라도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한다면, 내 경제학 지식과 명예를 걸고 기꺼이 토론할 용의가 있다. 

포퓰리즘(Populism)의 어원은 라틴어로 민중(People)이란 뜻인 Populus다. 그러니까 혁명이 아닌 개혁을 통해 보통 사람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믿음인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뿌리가 같은 말이다. 권력을 쥔 소수 기득권층이 그를 곱게 볼 리 없고, 다수의 민의를 대변하건, 소수의 특정 집단을 선동하건 그들을 싸잡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이념의 좌우를 불문하고 일반인에게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다. 정치인이 자신을 좌파 또는 우파라곤 하지만, 포퓰리스트라 하진 않는 이유다. 

이념적으로 보수는 기득권, 진보는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포퓰리즘과 진보는 태생적으로 거대한 공통집합이 존재하고 보수와 포퓰리즘은 인종차별과 같은 특정 사안의 공통집합이 있다. 그래서 포퓰리즘이란 단어를 정확히 사용하려면 보수면서, 특정 서민층 표심을 얻기 위해 이념의 영역을 벗어나 구애하거나, 진보에서도 복지국가의 개념을 넘어 나라가 파산할 정도를 일컬어야 한다. 

진보 정치인을 무조건 포퓰리스트라 칭하는 건, 한국의 자칭 보수가 좌파를 이념과 무관한 종북이나 빨갱이로 부르는 것과 같이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나라가 파산하는 건 무리한 복지 정책보단 전쟁과 부정부패에 기인한 경우가 무수히 더 많다. 

역사적으로 포퓰리즘이라 매도당한 거국적 운동이 긍정적으로 성취한 것도 많다. 미국의 누진 소득세, 상원의원 직접 선거제, 단체 교섭권, 철도 요금 연방 규제, 금융 시스템 연방정부 관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단어가 된 배경엔 극우 국수주의가 유색 인종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잃는다며 뒤집어씌워 특정 그룹을 선동한 사례와 같은 인종차별주의 때문이다. 

예로 미국 트럼프 대선 주자가 보수 공화당이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표어로 그동안 소외감 느낀 학력 낮은 백인 남성 노동자 계층을 선동하여 이민자와 반목하게 하고,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 철폐(Affirmative Action) 등을 공적 1호로 삼아 국수주의를 표방한 게 바로 교과서적 포퓰리즘이다. 

한편 진보층 대선 후보인 샌더스 상원의원이 주장하는 국가 건강보험, 공립대학 등록금 무료, 부자 증세, 서민 감세 등은 진보 이념의 바닥에 깔린 기본 사상이라 정치 공세가 아니라면 굳이 포퓰리즘이라 따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자칭 보수 자유한국당 전신이 툭하면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거야말로 이념적 테두리를 벗어난 교과서적 포퓰리즘이라는 말이다. 

[기사 인용] 안보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머지않아 미국은 떠나고 일본과는 등지고 이 나라는 중국권에 예속될 처지에 놓여있다. 평화 통일과 연방이라는 허울 아래 북한에 굴종할 수도 있다. 

안보가 무슨 근거로 왜 위태로운가? 김대중은 아직도 한나라당 총풍사건 때 의식에 머물러 있다. 가장 안보에 취약한 친독재 세력이면서, 겉으로 반공, 멸공이나 외치고 김일성 일가 욕이나 하면 안보 의식이 투철하다는 가짜 안보 장사꾼이다. 트럼프는 한미 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하는데도 그에 대해 단 한마디 반론도 펴지 못하면서 왜 문재인한테만 자꾸 미국이 떠난다고 하나? 그리고 설혹 미국이 떠난다 해도, 그건 트럼프가 우방의 안보를 돈 지갑과 먼저 연계하는 얄팍함 때문이라는 건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명박, 박근혜의 일제 식민 사관을 거부하는 대한민국 국민 절대다수와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관을 극우파 아베가 싫어하기에 한일 관계가 껄끄러운 건데, 토착왜구가 아니라면 어떻게 일본 편을 드나? 

평화 통일을 반대한다면 전쟁광이거나 정신 이상자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뭔지도 모르니 부끄러운 줄 모르고 북한에 굴종한다는 헛소리나 하며 생긴 대로 논다. 

[기사 인용]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가치관은 (북한과의) 평화뿐이다. 하지만 이념적 대결과 군사적 대치의 극을 달리는 한반도 상황에서 평화라는 구두선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일 수 있는가? 

문 대통령 최선의 가치관은 북한과의 평화이기에 앞서 자유, 인권, 평등, 복지와 같이 지금까지 친독재 세력이 집권하면서 무시되어 온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다. 그를 위해 북한과도 극단적 군사적 대치를 피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거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승패를 불문하고, 전 국민이 6·25와 같이 비참한 경험을 다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전면전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건 구두선이 아니라 참선이며, 욕지거리나 하며 주먹부터 나가는 조폭과 고차원적 외교 달인의 의식 차이다. 글은 일반인이 읽기 쉽게 써야 한다. 빈말이라 하면 될 걸, 굳이 구두선이란 한자어를 꼭 쓸 이유가 있나? 어휘력이란 어려운 말을 골라 쓰는 게 아니고, 쉬운 말로 뜻을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이다. 

[기사 인용] 인간다운 삶, 자유로운 삶은 맹목적인 평화보다 귀중할 수 있다. 진정한 인본주의자는 굴욕적인 평화보다는 전쟁을 택할 수도 있다. 

"인간다운 삶, 자유로운 삶은 맹목적인 평화보다 귀중할 수 있다."는 구절을 읽고, 난 "인간다운 삶, 자유로운 삶은 맹목적인 개발 독재보다 귀중할 수 있다."는 말을 왜 김대중은 박정희, 전두환 시절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지금 북한의 이웃 국가도 아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굴욕적인 평화를 택하고 있나? 그건 아닐 거다. 이게 바로 한국 자칭 보수의 뿌리 깊은 사대주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비슷한 상황에서 하는 말과 행동에 문재인은 종북이고 트럼프는 아니다. 그건 억지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처럼 김대중의 기사 글엔 애초부터 논리란 게 아예 없다. 그렇다면 논리력, 문장력, 어휘력 모두 수준 이하인 그가 어떻게 언론사에서 승진을 거듭하여 사내 원로급 기자가 되었을까? 방상훈, 김대중에 관한 위키백과를 참조하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지금 사주가 된, 오래전 사주 아들과의 돈독한 관계 때문일 거 같다. 

김대중은 1939년생으로 1966년 2월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가 되고, 1968년 11월 결혼 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한편 방상훈은 1948년생이며 196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미국에서 대학을 마쳤다. 그러니까 1966년 9월부터 1968년 9월 사이 언젠가 대학에 입학했다 추정할 수 있다. 1970년 9월 외신부 근무를 시작하여, 1971년 5월부터 1972년 5월까지 조선일보 주미 특파원을 역임한다. 

서류상으로, 방상훈은 미국 오하이오주 소재 삼류 대학(응시생의 70~80%가 합격) 유학생이면서, 동시에 수백 km 이상 떨어진 조선일보 미주 지국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일할 만큼 초인적인 인물이었다. 자력으로 기사를 하나나 제대로 썼는지는 모르겠다. 

김대중은 당시 조선일보 워싱턴 지국 특파원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방상훈 술 시중을 얼마나 잘 들었으면 장자연 사건 때 "내가 방사장과 술을 같이 마셔봐서 아는데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사설 아닌 소설을 썼을까? 그 순간 조선일보의 언론계 위상은 찌라시로 자유낙하 했다. 얼마나 같이 붙어 다니고, 외박도 자주 했으면 부인도 모를 방상훈의 술버릇과 술좌석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김대중은 그리도 잘 아는 걸까? 

그냥 생긴 대로, 살아온 대로 기사 쓰는 건 좋은데, 제발 뒷짐 지고 후배 기자들에게 문장력, 어휘력 운운하진 말라고 김대중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 꼭 박정희 생전 괴발개발 발로 그린 거 같은 붓글씨를 국보급 문화재 현판으로 걸어놓고 전 국민을 정신 문화적으로 고문하던 시절이 연상되어서다. 

미국에서 빨갱이 공포(Red Scare)로 수많은 생사람을 잡던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에게 웰치(Joseph N. Welch)는 1954년 국회 청문회장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하는데, 그 순간이 매카시즘 몰락의 전환점이 되었다. 난 오늘 웰치의 펄펄 살아 움직이는 감동의 언어를 김대중에게 전한다. 

You've done enough. Have you no sense of decency, sir? At long last, have you left no sense of decency?

If it were in my power to forgive you for your reckless cruelty, I would do so. I like to think I am a gentleman, but your forgiveness will have to come from someone other tha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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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기자 출신으로 외국 언론사에 취업하여 외국 기자면 절대 쓰지 않을 빨갱이 종북타령 기사를 써대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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